주식에 대한 열정(탐욕)은 시간을 버티며 고비는 있었지만,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
버티며 위로받아야 했고,위로받으며 살아남야야했다.
지나온 슬픈시간에 대한 최소예의로, 최면과 착각사이에 조금더 인내하면
나도 희망현실과 마주 할수 있다는 불안전한 믿음이 있었기에.
흐르는 눈물보다 가슴이 찌져나가는 가슴속 비수시간이 쌓여,
그동안 가려져있던 탐욕과 공포에 진정 마주서서, 그들을 알고 싶었다.
탐욕과 공포의 참모습이 무엇인지,그래야 여정을 마칠수 있기에.
힘든여정의 마지막 질문였기에 많은 시간을 책과 고독에 쌓여,
관찰자로, 관찰대상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며, 보고 또 보며 또 보았다.
그렇게 그리고 보게 되었다.
탐욕과 공포의 고독에 맞서있는 나(인간)의 모습을.
탐욕과 공포는 맞서는 시간이 늘면 늘수록 더큰 괴물로 진화했다.
그 존재가 보일때는 나 자신도 보이고, 보이지 않을때는 나 자신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맞서고 자신이 보이지 않을때 우린 큰상처(큰손실)를 받는다.
그래서 내면관찰로 인해 나를 봐야 한다는것이 저 존재를 보기위함이지만,
그렇다고 저 큰상처(큰손실)가 절대 일시적일수 없다. 우리가 주식에 에너지를 기울이는한..
기울이지 않으면 존재조차 희미하지만, 내면을 본다하더라도 기울이면 기울수록 상처의 반복은 지속될것이다.
그것이 인간이고, 그래야 인간이고, 그래서 인간이다.
허나 진정한 문제는 탐욕과 공포로 인해 현재의 삶을 허비하고 있다는데 있다.
결국 탐욕과 공포는 맞서 이길대상이 아니고, 나를 봐라봐야 하는 행위인데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여러이유(?)로 거기까지도 가보지 못하고 낙오되며
재기회를 보는 또 잠재낙오자들까지도 아직 즐비하고 있다.
주식은 분석에 치우치는 사람보다, 시간을 인내할수있는 투자자 상위투자자고, 그 시간투자가 보다
자유에 서있는 투자자자 상위투자가 이듯 탐욕과 공포에 자유로울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에너지가 삶의 에너지로 전환될때 인생이 바뀔것임을 확신한다.
이것이 탐욕과 공포를 이겨내며, 주식도 인생도 건질수 있는 여러 방법중 하나다.
각자의 매매스타일에서 한발짝 내려놓으면,
그것이 공포와 탐욕에서 한발짝 내려놓으면서,
삶의 에너지로 전환될때,
인생이 나아지지 않겠는가?